에스겔서의 예언은 종종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에스겔 22장에 이르러서는 그 무게감이 절정에 달합니다. 이 장은 '피의 성읍'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와 그곳에 만연한 죄악의 목록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선포합니다. 단순한 멸망의 예고를 넘어, 한 공동체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기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섬뜩한 경고와 함께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합니다. 예루살렘의 타락상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같은 풀무 심판의 의미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맥락 소개
에스겔 22장의 예언이 선포된 시기는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직전, 혹은 이미 1차, 2차 포로로 많은 백성이 끌려간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는 혼란의 극치를 달렸고,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불의와 타락이 만연했으며,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총체적인 위기 속에서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지도자들과 백성들 다수는 여전히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인 안전을 확신하거나,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위로에 귀를 기울이며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 무감각과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을 때,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예루살렘의 죄악을낱낱이 고발하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경고이자 회개의 촉구였으며, 이미 포로가 된 자들에게는 예루살렘 멸망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한 사회와 공동체가 내부로부터 어떻게 붕괴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곳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는 엄중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핵심 사건 또는 본문 요약: 피의 성읍, 예루살렘의 죄악 목록
에스겔 22장은 예루살렘을 "피의 성읍"(겔 22:2)이라고 규정하며, 그곳에서 자행된 끔찍한 죄악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이 죄악들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인자야 네가 이 피 흘린 성읍을 국문하려느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에게 알리어 이르기를"(겔 22:2-3)이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의 죄악을 조목조목 고발하도록 명령하십니다. 나열된 죄악들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
-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자기를 더럽힘 (겔 22:3-4)
- 하나님의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더럽힘 (겔 22:8)
- 생명 경시와 폭력:
-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망할 날을 재촉함 (겔 22:3, 6)
- 사람을 죽이려고 서로 모함함 (겔 22:9, 개역개정 "이간을 붙이며")
- 뇌물을 받고 사람을 죽임 (겔 22:12)
- 사회적 약자 학대 및 관계 파괴:
- 부모를 업신여김 (겔 22:7)
- 나그네를 학대함 (겔 22:7)
-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함 (겔 22:7)
- 이웃을 속여 빼앗음 (겔 22:12, 개역개정 "해롭게 하여 이익을 얻었으며")
- 성적인 타락:
-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냄 (근친상간) (겔 22:10)
- 월경 중에 있는 부정한 여인과 관계함 (겔 22:10)
-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함 (겔 22:11)
- 며느리를 더럽힘 (겔 22:11)
- 자매 곧 아버지의 딸과 관계함 (겔 22:11)
- 경제적 착취와 불의:
- 뇌물을 받고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함 (겔 22:12)
- 변돈과 이자를 받음 (고리대금) (겔 22:12)
이러한 죄악들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이방 가운데 흩으시며 여러 나라에 헤치시고, 그들의 더러움을 그치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겔 22:15). 또한, 예루살렘이 모든 나라에게 능욕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겔 22:4-5).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을 놋이나 주석, 쇠, 납 같은 찌꺼기에 비유하시며, 그들을 예루살렘 가운데 모아 풀무 불에 녹여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겔 22:18-22). "내가 분노와 격분을 쏟아 너희를 그 가운데에 두고 녹이리라 ... 너희가 내 격노의 불에 녹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22:21-22).
철학적/존재론적 상징 해석: 피의 성읍과 불타는 풀무
에스겔 22장에 등장하는 "피의 성읍"과 "불타는 풀무"라는 이미지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죄악의 본질과 심판의 의미에 대한 깊은 철학적, 존재론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피의 성읍"이라는 규정은 예루살렘이 생명을 경시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정의가 완전히 실종된 공동체로 전락했음을 상징합니다. 피는 성경에서 생명을 의미하며,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예루살렘의 죄악 목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피 흘림'은 단순한 살인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 불의한 재판, 경제적 착취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생명 파괴 행위를 포괄합니다. 이는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즉 자연 상태의 혼란과 무질서를 연상시킵니다. 사회 계약을 통해 안정을 추구해야 할 공동체가 오히려 폭력과 불의의 온상이 된 것입니다. "피의 성읍"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파괴되고, 인간 사이의 신뢰와 윤리가 붕괴된 상태, 즉 존재론적 파탄을 의미합니다.
둘째, 나열된 구체적인 죄악 목록은 단순한 개인적 일탈의 합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구조적인 악의 시스템을 고발합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향한 배반이자 모든 가치 기준의 전도를 의미하며, 가족 윤리의 붕괴(부모 경멸, 근친상간), 사회적 약자 학대, 성적 문란, 경제적 불의는 공동체의 근간을 허무는 암적인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율법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국가란 각 계층이 자신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상태라고 보았는데, 예루살렘은 모든 영역에서 그 조화가 깨지고 탐욕과 불의가 지배하는 부정의한 국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셋째, "불타는 풀무" 심판의 비유는 단순한 파괴나 복수가 아니라, 정화와 연단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풀무는 금속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찌꺼기 같은 존재로 규정하시고, 그들을 예루살렘이라는 풀무 속에 넣어 그의 분노의 불로 녹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극심한 고통과 시련을 통해 그들의 죄악을 제하고, 그들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암시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처절하고 고통스럽겠지만, 풀무를 거치지 않고는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통의 의미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때로는 고통과 시련이 개인과 공동체를 정화하고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불사조(Phoenix)가 불 속에서 자신을 태워 재가 된 후 다시 살아나듯, 풀무 심판은 완전한 소멸이 아닌, 고통스러운 정화를 통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적용 또는 실존적 질문: 우리 안의 '피의 성읍'을 직시하다
에스겔 22장의 예루살렘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울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와 개인의 모습을 비추며,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 시대의 '피의 성읍'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만이 피를 흘리는 것은 아닙니다.
- 물질만능주의와 무한 경쟁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은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게 합니다.
-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정치, 부패한 권력, 언론의 왜곡 보도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 생명 경시 풍조(낙태, 자살, 묻지마 폭력 등), 환경 파괴로 인한 미래 세대의 생존권 위협 역시 우리 시대의 '피 흘림'입니다.
-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성적 착취 등 은밀하게 자행되는 폭력은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을 '피의 성읍'으로 만듭니다.
에스겔이 고발한 죄악들은 놀랍도록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들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 경멸, 나그네와 약자 학대, 성적 타락, 경제적 불의는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반복된다." - (조지 버나드 쇼)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느껴야 할까요? 에스겔은 개인의 죄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죄악을 지적했습니다. 우리 역시 사회 구조적인 악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관한다면, 그 죄악에 동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불의를 보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작은 목소리라도 내어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까?
"불타는 풀무"의 심판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때로는 개인적인 시련, 사회적인 혼란, 경제적인 위기 등이 마치 풀무 불처럼 우리를 덮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과 사회의 죄악을 돌아보고 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는 우리에게 기존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풀무'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변화해야 할까요? 고통 속에서 좌절하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정화하시는 손길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스겔 22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악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 나는 '피의 성읍'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내 삶에 닥치는 시련과 고통을 정화와 성장의 기회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결론 요약
에스겔 22장은 '피의 성읍'으로 전락한 예루살렘의 총체적인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불가피하고도 불같은 심판을 선포합니다. 우상 숭배, 생명 경시, 사회적 약자 학대, 성적 문란, 경제적 착취 등 예루살렘에 만연했던 죄악의 목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깊은 경종을 울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으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을 이방 가운데 흩으시고 조롱거리로 만드시며, 마치 풀무 불에 찌꺼기를 녹여내듯 그의 분노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 '풀무 심판'의 이미지는 극심한 고통과 파괴를 예고하지만, 동시에 죄악을 정화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결국 에스겔 22장은 한 공동체가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어떤 비참한 결과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처절한 심판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백성을 정결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냅니다. 이 고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고, 공동체의 아픔에 동참하며,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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