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는 구약 성경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때로는 난해한 예언서로 손꼽힙니다. 그 안에는 하늘의 영광, 기이한 환상, 충격적인 상징 행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이 모든 예언의 중심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받아 그 말씀을 대언해야 했던 한 인물, 바로 예언자 에스겔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독특한 호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자(人子, Son of Man)'입니다. 이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서 전체에 걸쳐 무려 90번 이상 등장하며, 에스겔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합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에스겔에게 주어진 이 '인자' 호칭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그의 고독했던 사명과 예언자적 정체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여정으로, 에스겔에게 '인자'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주어지는 극적인 장면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에스겔서의 시작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바벨론 그발 강가, 포로로 잡혀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합니다(에스겔 1장).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폭풍과 큰 구름, 그 속에서 번쩍이는 불과 단 쇠 같은 광채, 그리고 네 생물의 기이한 형상과 그 곁의 눈이 가득한 바퀴들, 그 위에는 수정같이 맑은 궁창과 남보석 같은 보좌, 그리고 마침내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무지개 같은 영광의 광채.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언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초월적인 위엄과 거룩하심,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에스겔은 이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는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에스겔 1:28)라고 기록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유한하고 죄 많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는 바로 경외감 속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근원적인 간극,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왜소함과 실존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라고 탄식했던 것처럼, 에스겔 역시 그 거룩한 빛 앞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소멸될 것 같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하는 경험은 인간에게 황홀경과 동시에 존재론적 위기를 가져다줍니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자기 이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만이 실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사명은 바로 이 압도적인 하나님 체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앞으로 전해야 할 모든 메시지의 권위와 능력은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과의 만남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압도되어 엎드려 있던 에스겔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에스겔 2:1-2). 바로 이 순간, 에스겔에게 처음으로 '인자'라는 호칭이 주어집니다. '인자(벤 아담, בֶּן־אָדָם)'는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 또는 '인간'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단순히 인간 존재임을 나타내는 말로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사용됩니다(예: 시편 8:4, 욥기 25:6).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부르실 때 이 평범해 보이는 호칭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셨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광과 대조적으로 에스겔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유한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흙으로 빚어진 다른 모든 인간과 똑같은 '사람의 아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앞으로 전하게 될 예언의 권위가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를 부르시고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둘째,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이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고통과 운명에 동참하는 자임을 나타냅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온 동족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이 겪는 절망과 아픔을 공유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인자'로서의 에스겔은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셋째, '일어서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지는 '인자'라는 호칭은, 이제 그가 개인적인 무력감과 절망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존재로 새롭게 세워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는 것은, 그의 사명이 인간적인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의 예언자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그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능력, 백성과의 연대성, 그리고 사명에 대한 순종이라는 다층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부르심의 장면은 앞으로 에스겔이 '인자'로서 겪게 될 모든 고난과 영광의 서곡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지칭하며 반복적으로 사용하신 '인자'라는 호칭은 단순한 부름을 넘어, 그 속에 깊은 신학적 의도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호칭이 왜 에스겔에게 주어졌는지에 대한 초기 해석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에스겔의 사명과 정체성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고대 근동 문화에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종종 인간의 나약함,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신적 존재와의 현격한 차이를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8편 4절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인간의 미미함을 고백합니다. 욥기에서도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자가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욥기 25:6)라며 인간의 불완전성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신 것은, 그가 아무리 놀라운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한계와 약점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이는 예언자가 교만해지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을 방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구로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이 전해야 할 메시지의 객관성과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메시지를 받는 백성들은 에스겔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에스겔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날수록, 그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의 초월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이 특정 지파나 가문에 속한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으로서 부름받았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그의 경험과 메시지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신 것은 그의 인간적 한계를 명확히 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메시지의 신적 권위를 확보하며,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다층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호칭은 에스겔의 사역 내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예언자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규정하고 형성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결론: '인자' 에스겔, 절망 속에서 피어난 사명의 씨앗
에스겔서의 서두,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 앞에서 무력하게 엎드렸던 한 인간에게 "인자야, 일어서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첫 부르심과 함께 주어진 '인자'라는 호칭은, 에스겔의 기나긴 예언 사역의 출발점이자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됩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 호칭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광과 대조되는 인간 에스겔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연약한 인간을 통해 당신의 위대한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방식을 드러냅니다. 에스겔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인이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같은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야 하는 무거운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가 '인자'로 불렸다는 것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권위가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또한, 이 호칭은 그가 포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그들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절망적인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암흑 속에서, '인자' 에스겔에게 주어진 사명은 꺼져가는 이스라엘의 운명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인자'로서의 부르심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고독하고도 영광스러운 예언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인자'라는 호칭을 통해 우리는 연약한 인간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발견하며,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명의 씨앗을 목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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