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2장, 애굽 왕 바로를 위한 두 편의 애가: 바다 괴물과 스올의 나락

에스겔서에서 애굽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는 32장에 이르러 두 편의 장엄하고도 처절한 애가를 통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첫 번째 애가는 애굽 왕 바로를 바다의 거대한 용(악어)에 비유하여 그의 난폭함과 그로 인한 비참한 최후를 그리고, 두 번째 애가는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가 스올(음부)로 내려가 이미 멸망한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비참하게 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 두 애가는 인간 통치자의 교만과 세상 권세의 허망함,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최종성과 보편성을 강력하게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Two laments for Pharaoh of Egypt from Ezekiel chapter 32: first, his downfall as a sea monster, and second, his descent into Sheol to lie with other fallen, proud nations, symbolizing divine judgment.

시대적 배경과 맥락 소개

에스겔 32장의 두 애가는 기원전 585년경, 예루살렘이 이미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 주어진 예언으로 보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큰 의지처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과거 유다를 유혹하고 실망시켰던 애굽의 운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컸을 것입니다. 애굽은 비록 바벨론에게 군사적으로 밀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일 강의 풍요와 오랜 역사,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이러한 애굽의 남은 영광마저도 곧 스러질 것임을 두 편의 애가를 통해 선포합니다. 첫 번째 애가는 바로 왕을 바다의 난폭한 괴물에 비유하여 그가 사로잡혀 뭍에 던져지고 모든 짐승의 먹이가 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그의 교만과 폭력적인 통치가 초래할 비참한 개인적 종말을 예고합니다. 두 번째 애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로와 그의 군대가 스올, 즉 죽은 자들이 거하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 그곳에서 이미 멸망한 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북쪽의 시돈 통치자들 등 과거에 세상을 호령했던 교만한 나라들과 함께 수치를 당하며 누워있을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는 애굽의 심판이 단독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하게 행했던 모든 세상 권력들이 맞이하는 보편적인 운명임을 강조합니다. 이 애가들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 역사의 모든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제 아래 있으며, 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절망 속에 있는 포로들에게 역설적인 위로와 함께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에 대한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핵심 사건 또는 본문 요약: 애굽 왕 바로를 위한 두 편의 애가

에스겔 32장은 애굽 왕 바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두 편의 슬픈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애가는 다른 시각과 이미지를 사용하여 심판의 처절함과 최종성을 강조합니다.

  • 첫 번째 애가: 바다의 용(악어) 바로의 비참한 최후 (1-16절)
    • 때는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룻날.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애굽 왕 바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고 명령하심.
    • 바로는 자신을 여러 나라 가운데의 젊은 사자에 비겼으나,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용(혹은 악어)과 같다고 하심. 강에서 뛰놀며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음 (난폭함과 교만).
    • 하나님께서 여러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그물로 그를 잡아 끌어올려 뭍에 던지실 것임. 공중의 모든 새가 그 위에 앉고 들의 모든 짐승이 그로 말미암아 배부를 것임.
    • 그의 살점을 여러 산에 두며 그의 시체를 모든 골짜기에 채우고, 그의 피로 땅과 산을 적시며 모든 개천을 채울 것임 (극도의 파괴와 죽음).
    • 하나님께서 그의 빛을 가리실 때, 해를 구름으로 가리고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하며,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어둡게 하여 그의 땅에 어둠을 내리실 것임 (우주적 재앙, 신적 권능의 상실).
    • 그의 패망 소식이 여러 나라, 곧 그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까지 이르게 될 때,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임.
    • 많은 백성이 그로 말미암아 놀라고, 왕들은 심히 떨며 두려워할 것임.
    • 바벨론 왕의 칼이 그에게 임할 것이며, 용사들 곧 여러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그의 무리가 엎드러질 것임.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할 것임.
    •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짐승을 큰 물가에서 멸절시켜 다시는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물을 흐리지 못하게 하고, 그 물을 깊게 가라앉혀 기름 같이 흐르게 하실 것임 (완전한 황폐화와 평정).
    • 애굽 땅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임.
    • 이것은 슬픈 노래이니 여러 나라 여자들이 부를 것이며, 애굽과 그의 모든 무리를 위하여 부를 것임.
  • 두 번째 애가: 바로와 그의 군대의 스올(음부)행 (17-32절)
    • 때는 열두째 해 그 달 열닷샛날.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애굽의 무리와 유명한 나라의 딸들을 구덩이(스올)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던지라고 명령하심.
    •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하겠느냐? 너는 내려가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누울지어다."(겔 32:19, 새번역)
    • 애굽은 칼에 죽임 당한 자들과 함께 눕게 될 것임. 그와 그의 모든 무리가 이미 칼에 넘겨졌음.
    • 스올 가운데서 능력 있는 용사들이 그를 돕는 자들과 함께 그에게 말할 것임: "할례 받지 못한 자들, 칼에 죽임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여기에 누워 있다."
    • 그곳에는 이미 멸망한 여러 나라들이 있음:
      • 앗수르와 그의 모든 무리: 그 무덤들이 그의 주위에 있으며 다 칼에 죽임 당함.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있고, 그의 무리는 자기 무덤 주위에 있으며, 그들은 산 자들의 땅에서 두렵게 하던 자들이었음.
      • 엘람과 그의 모든 무리: 그 무덤이 그의 주위에 있으며 다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 당함. 그들도 산 자들의 땅에서 두렵게 하던 자들이었으나, 이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함. 그가 죽임 당한 자 중에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의 모든 무리가 자기 무덤 주위에 있음.
      • 메섹과 두발과 그의 모든 무리: 그 무덤들이 그의 주위에 있으며 다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 당함. 그들도 산 자들의 땅에서 두렵게 하던 자들이었음. 그들은 옛날 할례 받지 못한 용사들이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 자기 칼을 베개 삼고 자기 죄악을 자기 뼈에 두었던 것처럼 영광스럽게 눕지 못함 (비참한 죽음).
      • 바로 너도 할례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하여 칼에 죽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라.
      • 에돔과 그의 왕들과 모든 지도자: 그들도 강하였으나 칼에 죽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며 할례 받지 못한 자와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있을 것임.
      • 북쪽의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 그들도 강하였으나 수치를 당하며 죽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갔고 할례 받지 못한 자와 칼에 죽임 당한 자와 함께 누웠음.
    • 바로가 그들을 보고 자기의 모든 군대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 (모두가 같은 운명임을 확인함으로써 얻는 비뚤어진 위로).
    • 하나님께서 바로를 산 자들의 땅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 그가 할례 받지 못한 자와 칼에 죽임 당한 자와 함께 그의 모든 군대와 더불어 누우리라.

두 편의 애가에 나타난 바로의 운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가 구분 바로의 비유 주요 심판 내용 최종 상태
첫 번째 애가 (1-16절) 바다의 큰 용(악어) 그물에 잡혀 뭍에 던져짐, 짐승의 먹이가 됨, 땅과 강이 피로 물듦, 빛이 사라짐, 바벨론 왕의 칼에 멸망. 완전한 파괴와 황폐, 애도의 대상.
두 번째 애가 (17-32절) 스올에 내려가는 교만한 통치자 지하(스올)로 던져짐, 할례 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누움, 과거의 다른 멸망한 나라들(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시돈)과 함께 수치를 당함. 죽음의 세계에서 비참하게 거함, 산 자들의 땅에서 잊혀짐.

철학적/존재론적 상징 해석: 바다 괴물의 최후와 스올의 공포

에스겔 32장의 두 애가는 인간의 교만과 권력의 허무함,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고대 근동의 관념을 반영하며 깊은 철학적, 존재론적 성찰을 제공합니다.

첫째, '바다의 용(악어)'으로 비유된 바로의 교만과 그 최후는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혼돈 세력의 말로를 상징합니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 바다나 바다 괴물은 종종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했으며, 창조신은 이 혼돈을 제압하고 질서를 세우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바로가 자신을 강의 주인이라 여기며 난폭하게 행세하는 것은 이러한 혼돈 세력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물로 잡아 뭍에 던져 비참하게 죽게 하심으로써, 어떤 강력한 인간 권력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으며 그분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해와 달과 별빛이 어두워지는 우주적 재앙의 묘사는, 한 시대의 종말과 신적 권능의 완전한 상실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마치 신화 속 영웅이 괴물을 퇴치하는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정의가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 스올(Sheol)에 내려간 바로와 그의 군대의 모습은 죽음의 보편성과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의 관념을 반영합니다. 스올은 구약 성경에서 죽은 자들이 거하는 어둡고 침묵하는 지하 세계로 묘사되며, 그곳에서는 지상의 영광이나 권세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한때 세상을 두렵게 했던 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등의 강대한 통치자들도 스올에서는 힘없이 누워 있으며, 새로 내려온 바로와 그의 군대를 맞이합니다.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하겠느냐?"는 질문은 지상의 모든 차별과 위계가 죽음 앞에서 무효화됨을 강조합니다. 바로가 그곳에서 다른 멸망한 자들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는 표현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이는 긍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자신만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비뚤어진 안도감, 혹은 모든 교만한 자들의 공통된 종말을 확인하는 씁쓸한 깨달음일 것입니다. 이는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필연성 앞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게 만듭니다.

셋째, '할례 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눕는다는 반복적인 표현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 수치와 모욕을 의미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징이었으므로, 할례 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취급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되고 이방인처럼 버림받는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군대가, 그리고 스올에 있는 다른 교만한 통치자들이 이처럼 '할례 받지 못한 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의 뜻을 거역한 결과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할례를 넘어, 마음의 할례, 즉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순종과 헌신이 없는 모든 인간 권력의 종국적인 운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적 적용 또는 실존적 질문: 우리는 어떤 애가를 남길 것인가?

에스겔 32장의 슬픈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남겨질 유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시대의 '바다 괴물'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할까요? 자신의 힘과 부를 과신하며 타인을 억압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든 권력자는 현대판 바로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 기업 총수, 심지어 작은 공동체의 리더까지도 교만과 탐욕에 사로잡히면 주변에 해악을 끼치고 결국에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어떤 인간적인 힘도 영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반드시 임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그 위험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올에서의 만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어떤 지위와 명예를 누렸든,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았든,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스올에서 과거의 경쟁자들과 원수들이 함께 누워있는 모습은 지상에서의 갈등과 적대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요? 에스겔의 애가는 우리에게 유한한 세상의 것에 집착하기보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을 도전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우리는 이 피할 수 없는 진리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삶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어떤 '애가'를 부를까요? 우리가 남긴 것은 무엇이며,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바로는 비록 애가를 통해 그의 과거 영광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국 그의 교만과 폭정, 그리고 비참한 최후가 강조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선한 영향력과 사랑의 기억을 남기는 삶, 아니면 이기심과 상처만을 남기는 삶일까요? 우리의 마지막이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서도 존경과 감사를 받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에스겔 32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나는 내 삶에서 교만의 '괴물'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의 허망함을 깨닫고, 나는 어떤 영원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이며, 어떤 유산을 남기게 될 것인가?

결론 요약

에스겔 32장은 애굽 왕 바로의 교만과 그로 인한 필연적인 멸망을 두 편의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애가를 통해 선포합니다. 첫 번째 애가는 바로를 바다의 거대한 용(악어)에 비유하여 그의 난폭함과 비참한 개인적 최후를 그리고, 두 번째 애가는 바로와 그의 군대가 스올(음부)로 내려가 이미 패망한 앗수르, 엘람 등 다른 교만한 나라들과 함께 수치를 당하며 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 두 애가는 인간 통치자의 교만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스올에서 모든 교만한 자들이 동등하게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모습은 지상의 영광과 차별이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짐을 강조합니다. 에스겔 32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만을 경계하고, 유한한 세상의 가치에 집착하기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준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