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6장에서 두로의 완전한 파멸이 예언된 데 이어, 27장은 그 멸망을 애도하는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애가(슬픈 노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장은 마치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거대한 무역선과 같았던 두로의 과거의 화려함과 그 방대한 교역망을 상세히 묘사한 후, 그 모든 영광이 한순간에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하는 처절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멸망의 기록을 넘어, 인간이 이룩한 부와 영광의 덧없음, 그리고 교만과 탐욕으로 가득 찬 문명의 필연적인 종말을 시적으로 노래하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이 슬픈 노래를 통해 두로의 영광과 그 몰락의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맥락 소개
에스겔 27장의 '두로의 애가'는 26장의 심판 예언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6세기 초, 남유다 왕국이 멸망해 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두로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무역 도시국가 중 하나였으며, 그 부와 영향력은 주변 국가들에게 경외와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레바논의 질 좋은 백향목으로 만든 배, 애굽의 아름다운 세마포 돛,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숙련된 기술자들을 통해 당대 최고의 선박을 건조하고 광범위한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두로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교만과 탐욕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멸망을 자신들의 이익 증대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그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에스겔 27장의 애가는 이러한 두로의 과거 영광을 마치 눈앞에 펼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뒤에 다가올 완전한 파멸의 비극성을 더욱 극대화하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한때 세상 모든 보물을 싣고 위용을 자랑하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는 것처럼, 두로의 모든 자랑거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애가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쌓아 올린 그 어떤 화려한 업적이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덧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물질적 풍요와 세상적 영광만을 추구하는 삶의 허무함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슬픈 노래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찬양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핵심 사건 또는 본문 요약: 화려한 무역선 두로의 건조와 침몰
에스겔 27장은 두로를 한 척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에 비유하며, 그 배의 건조 과정(과거의 영광과 교역망)과 결국 파선하여 침몰하는 모습(멸망)을 애가의 형식으로 노래합니다.
- 아름답고 견고한 배, 두로 (1-11절):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고 명령하심.
- 두로는 스스로 "나는 온전히 아름다운 배라"(겔 27:3)고 자랑함.
- 두로의 건조에는 최고의 재료와 기술이 동원됨: 스닐의 잣나무(판자), 레바논의 백향목(돛대), 바산의 상수리나무(노), 깃딤 섬의 황양목에 상아를 입힌 것(갑판, 혹은 의자), 애굽의 수놓은 가는 베(돛),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차일).
- 시돈과 아르왓 주민(노 젓는 자), 두로의 지혜로운 자(선장), 그발의 노련한 자(배의 틈을 막는 자), 바사와 룻과 붓 사람(용병 군사), 아르왓과 헤렉 사람(성벽 위 파수꾼), 감마딤 사람(망대 위 파수꾼) 등 다양한 민족이 두로의 영광에 참여함. 이들은 두로의 아름다움을 완전하게 하였음.
- 광대한 교역망과 풍부한 물품 (12-25절):
- 두로는 온 세상과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함. 상세한 교역 대상 국가와 물품이 나열됨:
- 다시스: 은, 철, 주석, 납
- 야완, 두발, 메섹: 사람(노예), 놋그릇
- 도갈마: 말, 군마, 노새
- 드단: 상아, 박달나무
- 아람: 남보석, 자색 베, 수놓은 것, 가는 베, 산호, 홍보석
- 유다와 이스라엘 땅: 밀, 과자(혹은 민닛과 반낙), 꿀, 기름, 유향
- 다메섹: 헬본 포도주, 흰 양털
- 워단과 야완: 가공된 쇠, 계피, 향품
- 드단: 말 안장 덮개
-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고관: 어린 양, 숫양, 염소
- 스바와 라아마: 각양 극상품 향 재료, 각양 보석, 황금
- 하란과 간네와 에덴,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 아름다운 물품, 청색 옷, 수놓은 것, 빛난 옷을 백향목 상자에 담고 노끈으로 묶어 교역함.
- "다시스의 배는 때를 지어 네 화물을 나르니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겔 27:25).
- 두로는 온 세상과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함. 상세한 교역 대상 국가와 물품이 나열됨:
- 두로의 파선과 침몰 (26-36절):
- 사공들이 배(두로)를 큰 물로 인도하였으나, 동풍(바벨론의 공격을 상징)이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깨뜨림.
- 재물과 상품, 바꾼 물건, 사공과 선장, 배의 틈을 막는 자, 장사꾼, 용사, 배 안의 모든 무리가 배가 파선하는 날 다 바다 한가운데 빠질 것임.
- 사공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물결이 흔들릴 것임.
- 모든 사공과 바다의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언덕에 서서, 두로를 위하여 크게 소리 질러 통곡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며 재 가운데 구르고,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며,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할 것임.
- 그들이 애가를 지어 부를 것임: "두로 같이 바다 가운데서 적막한 자 누구인고 ... 네가 바다 가운데서 파선한 때에 네 무역품과 네 승객이 다 빠졌음이여 ... 땅의 모든 상인이 너로 말미암아 놀라는도다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리로다"(겔 27:32, 34, 36).
철학적/존재론적 상징 해석: 아름다운 배의 침몰과 영광의 덧없음
에스겔 27장의 두로 애가는 단순한 멸망의 노래를 넘어, 인간 문명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존재론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온전히 아름다운 배'로서의 두로는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 부, 그리고 국제적 네트워크의 정점을 상징합니다. 스닐의 잣나무, 레바논의 백향목, 애굽의 세마포 등 당대 최고의 재료와 각지에서 온 숙련된 장인들,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은 두로가 이룩한 문명의 눈부신 성취를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인간의 이성과 창의력이 빚어낼 수 있는 지상의 낙원, 혹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는 자기 평가는 이미 교만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견고함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경계했던 '휘브리스(Hybris)', 즉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함과도 통합니다.
둘째, 광대한 교역망과 풍부한 물품 목록은 두로가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지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다시스에서 도갈마까지, 아람에서 아라비아까지, 온 세상의 귀한 것들이 두로로 모여들었고, 두로는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 상세한 목록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물질적 풍요와 상업적 성공이 한 문명을 얼마나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질 일시적인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이는 마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고 외쳤던 전도자의 탄식처럼,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서곡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물질을 통해 안정과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물질 그 자체는 영원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존재론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셋째, 동풍에 의한 배의 파선과 침몰은 외부의 강력한 힘(바벨론의 공격)에 의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인간 문명의 취약성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어진 배라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듯, 당대 최강을 자랑했던 두로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의 공격 앞에 처참히 무너집니다. 재물, 상품, 사공, 선장, 용사 등 배를 가득 채웠던 모든 것이 바다 한가운데 빠지는 장면은 완전한 상실과 절망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 계획과 노력이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역사의 격변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험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죽음, 고통, 투쟁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절감하고 존재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넷째, 주변 사람들의 통곡과 애가는 두로의 멸망이 가져올 국제적인 충격과 함께,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존재의 몰락 앞에서 사람들은 놀라고 슬퍼하며 그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러나 그 애가조차도 결국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는 절망적인 확인으로 끝맺습니다. 이는 인간의 기억 속에서조차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완전한 소멸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 그리고 그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 인간의 소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현대적 적용 또는 실존적 질문: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까?
에스겔 27장의 두로 애가는 마치 영화 '타이타닉'의 침몰 장면을 연상시키며, 오늘날 물질문명의 정점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온전히 아름다운 배'를 만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첨단 과학 기술, 눈부신 경제 발전,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정보통신망 등 현대 문명은 과거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강력해 보입니다.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만심이야말로 우리를 침몰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암초'일 수 있습니다. 금융 위기, 팬데믹, 기후 변화, 국제 분쟁 등 예기치 않은 '동풍'은 언제든 우리의 '아름다운 배'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 앞에서 겸손하게 우리 문명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쌓아 올린 부와 명예, 그리고 업적들은 과연 영원할까요? 두로가 자랑했던 수많은 귀한 물품들과 국제적인 명성은 결국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돈, 권력, 인기, 지식 등도 언젠가는 그 가치를 잃거나 우리 곁을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를 젓고 돛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요? 물질적인 풍요 너머에 있는 영원한 가치,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역시 화려했지만 결국 침몰하고 마는 두로의 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태복음 6:19-20). 어디에 우리의 보물을 쌓고 있습니까?
두로의 침몰을 보며 통곡했던 주변 사람들처럼, 우리는 세상의 덧없음과 성공의 허무함을 목격할 때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타인의 실패나 불행을 보며 안도하거나 혹은 잠시 연민하다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까? 두로의 애가는 단지 그들의 비극을 슬퍼하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재점검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화려했지만 결국 침몰한 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에스겔 27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나는 내 삶이라는 배를 무엇으로 만들고,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 나의 자랑과 자부심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영원한 것인가?
-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의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줄 진정한 닻은 무엇인가?
- 나는 다른 이들의 흥망성쇠를 보며 어떤 지혜를 배우고 있는가?
결론 요약
에스겔 27장은 한때 지중해 무역을 호령하며 막강한 부와 영광을 누렸던 도시국가 두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장엄한 '애가'입니다. 이 노래는 두로를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화려하고 견고한 배에 비유하며, 전 세계와 교역하며 쌓아 올린 눈부신 번영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랑거리는 결국 '동풍'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힘없이 무너져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하고 맙니다. 사공들과 주변 상인들의 통곡 속에서 두로의 모든 재물과 상품,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사라질 운명임이 선포됩니다. 이 비극적인 애가는 인간이 이룩한 물질문명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교만, 그리고 세상 영광의 덧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두로의 침몰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물질적 풍요와 세상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삶의 허무함을 경고하며,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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