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의 예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만, 25장에 이르러서는 그 시선이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로 향합니다. 이 장은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이라는 네 이웃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고난과 멸망을 보며 보였던 적대적인 태도와 조롱, 그리고 과거의 원한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국제 정치적 갈등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 자신을 향한 태도로 간주되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네 나라에 임할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역사의 주관자 되심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맥락 소개
에스겔 25장의 이방 민족 심판 예언은 예루살렘 멸망(기원전 586년) 전후의 시기에 주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이웃이자 때로는 적대 관계였던 주변 국가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등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매우 가까웠으며, 역사적으로도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할 때는 조공을 바치기도 했으나, 쇠약해지거나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는 종종 적대적으로 돌변하여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심지어 멸망을 기뻐하며 이득을 취하려 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되고 함락되는 과정에서 이들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조롱하거나, 유다 난민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바벨론 편에 서서 유다를 공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한 국가의 멸망을 틈타 이익을 얻으려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넘어, 언약 백성의 고난을 향한 모독이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더라도, 그 징계를 기회 삼아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이방 민족들의 죄악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심을 이 장을 통해 분명히 밝히십니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미치며, 특히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과 국가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핵심 사건 또는 본문 요약: 네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 선언
에스겔 25장은 네 이방 민족 각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순차적으로 선포합니다. 각 민족이 심판받는 이유와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 (1-7절):
- 죄악: 하나님의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 이스라엘 땅이 황폐해질 때,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 "아하 좋다!" 하며 기뻐하고 조롱함 (겔 25:3).
- 심판: 동방 사람(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기업으로 넘겨져 그들이 진을 치고 거처를 베풀며 열매를 먹고 젖을 마시게 될 것임. 암몬의 수도 랍바는 약대의 우리가 되고 암몬 족속의 땅은 양 떼가 눕는 곳이 될 것임. 그들이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고 즐거워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그들 위에 펴서 이방에게 노략을 당하게 하며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고 여러 나라 가운데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실 것임. 그제야 그들이 하나님을 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임 (겔 25:4-7).
- 모압과 세일에 대한 심판 (8-11절):
- 죄악: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며 유다의 특별한 지위를 부인하고 조롱함 (겔 25:8). (세일은 에돔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으로 보이나, 여기서는 모압과 함께 언급됨)
- 심판: 모압의 변경, 즉 그 나라의 영광이 되는 성읍들(벧여시못, 바알므온, 기랴다임)을 열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암몬 족속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삼게 할 것임. 모압이 더 이상 만민 중에 기억되지 못하게 할 것임. 하나님께서 모압에 벌을 내리시면 그들이 하나님을 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임 (겔 25:9-11).
- 에돔에 대한 심판 (12-14절):
- 죄악: 유다 족속을 쳐서 심히 복수하였고, 복수함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음 (겔 25:12).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가 깊었음)
- 심판: 하나님께서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에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폐하게 하여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손을 통해 에돔에게 원수를 갚으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대로 에돔에게 행할 것임. 그제야 에돔이 하나님의 복수를 알게 될 것임 (겔 25:13-14).
- 블레셋 사람에 대한 심판 (15-17절):
- 죄악: 옛날부터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유다 족속을 멸하고자 하여 복수함 (겔 25:15). (블레셋은 해안 지대에 거주하며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충돌해 온 민족임)
- 심판: 하나님께서 손을 블레셋 사람 위에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의 남은 자를 진멸하실 것임. 진노하심으로 그들에게 크게 복수하실 것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수하신즉 그들이 하나님을 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임 (겔 25:16-17).
이 네 민족에 대한 심판의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민족 | 주요 죄악 | 심판의 주요 내용 |
---|---|---|
암몬 | 이스라엘의 고난을 기뻐하고 조롱함 ("아하 좋다!") | 동방 사람에게 점령당하고 패망함 |
모압 (세일) | 유다를 다른 이방과 똑같이 취급하며 조롱함 | 동방 사람에게 점령당하고 기억되지 못함 |
에돔 | 유다에게 심히 복수함 (과거의 원한) |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손에 복수 당함 |
블레셋 | 옛날부터 미워하며 유다를 멸하려 함 | 진멸당하고 하나님의 큰 복수를 받음 |
철학적/존재론적 상징 해석: 조롱의 대가와 하나님의 공의
에스겔 25장의 이방 민족 심판 예언은 단순한 민족 간의 다툼을 넘어,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첫째, 타인의 고통을 향한 태도와 그 윤리적 무게입니다. 암몬과 모압이 심판받는 주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고난과 성소의 더럽힘을 보며 "아하 좋다!"고 외치거나, "다른 이방과 다름없다"며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적 악의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 공동체의 기본적인 연대감을 파괴하며, 고통받는 자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동정심(Mitleid)을 윤리의 기초로 보았는데, 이들 민족은 동정심은커녕 오히려 악의적인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성의 파괴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징계받는 상황일지라도, 그 고통을 조롱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는 고통받는 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둘째, 역사적 원한과 복수의 악순환입니다. 에돔과 블레셋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미움과 원한을 품고 유다에게 복수하려 했습니다. 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Lex Talionis)의 원리를 넘어서는, 증오에 기반한 파괴적인 복수였습니다. 이러한 복수는 결코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에 대한 복수를 직접 언급하시며, "내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을 통하여 내 원수를 에돔에게 갚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적인 사적 복수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복수의 주권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복수의 감정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이 통제되지 않고 정의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과 국제적 공의입니다. 에스겔 25장의 심판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도 임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특정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미침을 보여줍니다. 이는 고대 근동의 부족신 개념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신 개념을 드러냅니다. 각 민족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정의와 공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국제법이나 인권과 같은 개념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윤리적 책임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반복적인 선언은, 이 모든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공의로운 통치를 인정하게 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적 적용 또는 실존적 질문: 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에스겔 25장의 이방 민족 심판 이야기는 오늘날 개인의 삶과 국제 관계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과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경쟁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실패를 은근히 즐거워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공동체의 아픔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암몬과 모압의 죄는 바로 이러한 태도였습니다. SNS의 발달로 타인의 삶을 쉽게 엿볼 수 있게 된 오늘날, 익명성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거나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행위는 현대판 "아하 좋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에스겔 25장은 우리에게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해묵은 원한이나 복수심은 없습니까? 에돔과 블레셋처럼 과거의 상처나 부당함에 얽매여 증오심을 키우고 복수를 꿈꾸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의 악순환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 간의 관계든, 집단 간의 갈등이든, 용서와 화해 없이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없습니다. 물론 정의는 바로 세워져야 하지만, 그것이 사적인 복수심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로마서 12:19)는 말씀처럼, 최종적인 심판과 공의의 실현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는 사랑과 용서의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그것이 파괴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일 수 있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정의를 추구해야 할까요?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강대국의 횡포, 약소국에 대한 착취, 민족 간의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에스겔 25장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는 살아있음을 선포합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타국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전쟁과 기아, 인권 유린 등으로 고통받는 이웃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의로운 국제 질서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에스겔 25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나는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함께 울어줄 수 있는가?
- 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원한은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나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하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 모든 민족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는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결론 요약
에스겔 25장은 이스라엘 주변의 네 이방 민족, 즉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들 민족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멸망을 기뻐하고 조롱하거나, 과거의 원한을 품고 적대적으로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일일이 지적하시며, 각 민족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 심판의 목적은 단순히 멸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주 여호와로 알게 하고 그분의 보편적인 주권과 공의를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고대의 예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윤리적 책임,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용서의 중요성, 그리고 국제 관계에서의 정의 실현 등 중요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결국 에스겔 25장은 개인과 국가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시선 아래 있으며, 그 어떤 악의적인 태도나 불의한 행동도 궁극적으로는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향한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고,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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